종교와 죽음
자연재해와 인간이 만든 재난은 가끔 국민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수백만 명의 죽음을 불렀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 발밑에는 안전망이 쳐져 있다. 보험, 국가가 후원하는 사회보장, 아주 많은 지역적, 국제적 NGO들이 사람들을 개인적 불행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한 지역 전체에 재난이 닥치면 범세계적인 구호 노력이 이어지고, 덕분에 최악의 사태를 피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신앙은 죽음을 삶에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바꿔놓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의 이슬람, 기독교, 고대 이집트 종교를 상상해보라. 이들 종교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며 내세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지, 죽음을 극복하고 이곳 지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바빴다.
과학자에게 죽음의 의미
과학자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나 암, 감염 같은 다양한 기술적 실패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답이 있게 마련이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지 않으면 심박조절기로 자극을 주거나 새 심장으로 교체하면 된다. 암이 날뛰면 약이나 방사선으로 죽이면 된다. 박테리아가 증식하면 항생제로 제압할 수 있다.
1199년 사자왕 리처드는 왼쪽 어깨에 화살 한 대를 맞았다. 오늘날이었다면 경미한 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생제나 효과적인 소독법이 없던 시절에 이 사소한 상처는 감염되었고, 괴저가 일어났다. 12세기 유럽에서 괴저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감염된 사지를 절단하는 것이었지만, 감염이 어깨에 있으면 그런 조치가 불가능했다. 괴저는 사자왕의 몸 전체로 퍼졌고, 아무도 왕을 도울 수 없었다. 2주일 후 그는 커다란 고통 속에서 죽었다.
야전병원 의사들은 병사들이 사지에 사소한 부상을 입었을 때조차 괴저가 두려워서 손과 다리를 늘상 절단했다. 절단은 다른 모든 의학적 처치(이빨 뽑기 등)와 마찬가지로 마취제 없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마취제 — 에테르, 클로로포름, 모르핀 — 가 서구 의학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클로로포름이 등장하기 전에는 의사가 부상자의 팔다리를 톱으로 자르는 동안 네 명의 병사가 환자를 잡고 있어야 했다.
17세기 영국의 경우 신생아 1천 명당 평균 150명이 출생 첫해에 죽었고, 모든 어린이의 3분의 1이 15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오늘날 영국에서 출생 첫해에 사망하는 아기는 1천 명당 다섯 명, 15세가 되기 전에 죽는 아이는 1천 명당 일곱 명에 불과하다.
과학연구에 자금이 지원되는 이유
정부와 기업의 금고에서 수십억 달러가 실험실과 대학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계에는 순수과학을 신봉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 많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이 무엇이 되었든 매력적으로 보이는 프로젝트에 이타적으로 자금을 댄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 연구자금의 실제를 몰라서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과학연구에 자금이 지원되는 이유는 그 연구가 모종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누군가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16세기의 왕과 은행가 들은 세계를 누비는 지리적 탐험대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지만, 아동심리학 연구에는 한 푼도 대지 않았다.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생각해보자. 똑같은 전문성을 가진 같은 부서의 생물학자 두 명이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1백만 달러의 보조금을 신청했다. 슬러그혼 교수는 우유 생산량을 10퍼센트 감소시키는 암소의 유선乳腺 감염질환을 연구하고 싶어 한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암소가 송아지와 떨어지게 되었을 때 정신적 고통을 받는지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 돈의 액수는 제한되어 있으며 두 연구 모두에 보조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가정할 때, 어느 쪽이 지원을 받아야 할까?
그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유의 상업적 잠재력을 중시하며 암소의 기분보다 인간 시민의 건강을 더 중하게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전제에 맞게 연구제안서를 작성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이다. 이를테면 이렇게 쓰는 것이다. “우울증은 우유 생산의 감소로 이어진다. 젖소의 정신세계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정신성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런 약은 우유 생산을 10퍼센트까지 늘릴 수 있다. 필자의 추정에 따르면, 소의 향정신성 약물에 대한 전 세계 시장의 수요는 매년 2억 5천만 달러에 이른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